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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을 해체하다. 해외 스타트업의 워케이션 문화

by 꼭경 2025. 6. 24.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이제는 낡게 느껴질 정도다. 해외 스타트업들은 더 이상 일을 중단하고 휴식을 하는 구조가 아니라, 일과 삶을 유기적으로 섞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워케이션이라는 문화의 진화가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해체하다. 해외 스타트업의 워케이션 문화

 

워케이션은 일하면서 쉬는 것이 아니다. 개념의 오해부터 풀자

많은 사람들이 워케이션을 들으면 노트북 들고 리조트에서 일하는 그림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단순한 원격 근무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워케이션은 말 그대로 일과 휴식을 병렬적으로 배치한 하이브리드 라이프스타일이다. 즉, 완전히 쉬지도 않고, 온전히 일에도 몰두하지 않는 그 사이 지점에서 새로운 일과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기반의 기업들, 특히 tech 기반 스타트업들은 팬데믹 이후 이 문화를 적극 도입해왔다. 예컨대 워드프레스 운영사는 아예 고정 사무실 없이 전 직원에게 자유로운 워케이션을 권장하고 있으며, 에어비엔비는 직원이 1년에 몇 개월간 다른 나라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운영 중이다. 이들이 워케이션을 장려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유’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창의성과 몰입은 새로운 환경에서 더욱 잘 자라난다는 연구 결과들이 워케이션 문화 확산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워케이션은 단기 휴가처럼 ‘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일을 더 유연하게 이어나가기 위한 구조’다. 이 때문에 자기 주도성과 시간 관리 역량, 업무 몰입력 등 개인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형태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은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진 인재들이 워케이션을 가장 잘 활용한다는 것이 스타트업들이 내린 공통된 결론이다. 정리하자면, 워케이션은 휴가도 아니고 재택근무도 아니다. 그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일과 삶을 경계 없이 운영하려는 라이프스타일 실험이며, 이는 곧 조직 문화의 유연성을 반영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워케이션을 제도화한 스타트업들의 실험. 어디서 일할지는 이제 내가 정한다

스타트업들이 워케이션을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제도화된 조직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글로벌 리모트 플랫폼 기업은 전 직원 워케이션을 허용할 뿐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디지털 노마드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이들은 워케이션을 단순히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한다.

또 다른 사례는 스페인의 여행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여행+일’이라는 자체 사업 아이덴티티에 맞게, 직원들이 3개월간 다른 국가에서 체류하며 일할 수 있는 권한과 항공비 일부 지원을 제공한다. 이는 워케이션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직 내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더 나아가, 일부 스타트업은 워케이션 장소를 회사가 직접 ‘큐레이션’하기도 한다.
예: 전용 코워킹 빌리지나 리모트 팜을 만들어 직원들이 단체로 머물며 일할 수 있도록 지원. 또한, 워케이션 제도는 업무 성과 중심의 평가 시스템과 연결되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즉, 누가 어디에서 일하는지가 아니라 결과물이 중심이 되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갈등이나 불신 없이 제도가 굴러간다. 그래서 워케이션을 도입한 회사들 대부분은 명확한 KPI, 주간 공유 시스템, 비동기 소통 기반의 협업 방식을 함께 정비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이러한 문화는 인재 유치와 유지 전략으로도 탁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에게, 워케이션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되기 시작했다.

 

완벽해 보이지만 고려해야 할 현실, 워케이션의 명과 암

이토록 유연하고 멋져 보이는 워케이션도 사실상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첫 번째는 생산성 관리의 어려움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불안정한 인터넷, 시간대 차이 등은 실제 워케이션 도중 업무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다국적 팀일 경우, 비동기적 협업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팀워크 유지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두 번째는 쉰다는 감각이 사라진다는 역설적인 문제다. 워케이션은 일과 쉼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완전한 회복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업무와 연결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로 인해 오히려 번아웃이 가속화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프랑스의 한 UX 스타트업은 직원들이 워케이션 후 오히려 ‘지쳐서’ 병가를 내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조직 문화의 균열 가능성이다. 워케이션을 선택한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 사이에 ‘상대적 자유도’와 관련된 불만이나 불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장 근무가 불가피한 직무와 디지털 기반 직무 간의 형평성 문제는 아직도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리더가 워케이션을 부정적으로 보는 조직에서는, 형식적인 자유만 주어진 채 실제 사용률이 낮아지는 상황도 흔하다. 그래서 진짜 워케이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만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지탱할 수 있는 시스템, 신뢰, 그리고 경계 설정의 기술이 필요하다. 쉬면서도 일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자기 조절력’과 ‘일을 대하는 철학’이 준비된 사람과 조직만이 누릴 수 있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워케이션은 단순히 업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다. 이 제도를 진짜 복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 모두의 심리적 유연성이 요구된다. 우리는 점점 더 경계 없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워케이션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서 일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